쿵스레덴(Kungsleden)은 스웨덴 북쪽 아비스코(Avisko)에서 남쪽 헤마반(Hemavan)까지 440Km에 달하는 트레일 코스이다. 세계 3대 트레일 코스 중 하나이며 북극권 기후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6~8월이 성수기로 백야를 경험하며 트레일을 즐길 수 있다. 겨울에도 같은 코스로 스키트레일을 하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 상상이 가지 않는다. 9월에도 그렇게 추웠으므로! 계속해서 인가가 나오지 않는 곳을 며칠이고 트레일을 하고 싶었다. 하루 종일 걸으며 적당한 곳을 찾아 텐트를 치고, 흙과 풀 냄새를 맡으며 간단한 커피와 함께 아침식사를 하고 다시 짐을 꾸려서 걷는 여행.

아직은 440Km를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주변을 정리하지 못한 상태이므로 아비스코로 들어가서 니칼루옥타(Nikaluokta)로 나오는 120Km정도의 코스를 하기로 했다. 중간중간의 헛(Hut: 간단한 식량과 숙소를 제공하는 산장 같은 곳)도 문을 닫는 시기여서 우린 6일 치의 식량을 모두 챙겨 짊어지고 가야 했다. 내 배낭의 무게는 17Kg, 아내의 배낭은 15Kg에 육박했다.

차길이 없기 때문에 혹시라도 사고를 당하면 헬기만이 유일한 운송수단이고, 그 헬기를 부르려면 중간중간의 헛에 놓인 위성전화를 사용해야하는 지역이다. 백패킹을 좋아하는 우리도 어쩔 수 없는 도시문명인인지라, 한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북극권 대자연에 대한 기대감과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곳이라는 두려움이 섞인 감정을 안고 아비스코로 향했다.
아비스코까지는 기차로 17시간이 걸린다. 처음 타보는 기차의 침대칸은 의외로 편안해서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저녁에 출발할 때는 가을 같았는데 아침에 깨어나보니 겨울 직전의 풍경이 창밖을 지나가고 있었다. 나무들도 점점 사라졌고, 키 큰 관목들도 점점 낮아져서 어느 순간 잔디처럼 낮은 관목들만 존재하는 세상을 마주할 수 있었다.

저녁에 출발한 기차는 다음 날 오후에야 도착했고 배낭을 멘 수십 명의 사람들이 비슷하게 흥분한 얼굴로 기차에서 내렸다. 역은 표를 파는 역무실 건물도 없이 그저 플랫폼만 서 있는, 세상의 끝 같은 곳이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기차에서 내린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작점(남쪽에서 걸어서 올라오는 것이 순방향이어서 보통은 종착점으로 여겨진다.)에 있는 큰 헛(Hut)에서 하루를 자고 다음날 출발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는 일정상 바로 출발하기로 했다. 여유를 부리더라도 자연 속에 들어가서 부리자는 게 내 생각이었지만 딱 2시간 뒤에 후회할만큼 조금은 안일했던 결정이었다. 하지만 모든 일정을 놓고 보면 또 그리 나쁘지 않은 결정이기도 했다.

2시간 정도 비를 맞으며  15Kg가 넘는 배낭을 메고 낯선 길을 오르내리니 힘들었다. 곧 해가 진다는 생각에 마음은 점점 급해졌다. 마주한 자연은 첫 순간부터 아름다웠지만 주변에 텐트를 칠만한 장소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나는  두 시간 전, 도전적으로 내린 결정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했던 지도상의 헛은 문을 닫았고 그 주변은 텐트를 치기에도 적당하지 않았다. 그러니 다음 헛인 아비스코아우레(Abiskojaure)까지 빨리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피식 웃게 될 정도로 그리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때는 ‘생존’이라는 단어마저 떠오를 정도로 절박한 심정이었다. 딴에 남자라고 이런 당황한 모습을 아내에게 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도 했었던 것 같다.

당황하니 더 힘들었다. 군대 이후로 가장 무거운 배낭이었는지 등도 아파왔다. 보일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도 좀처럼 아비스코아우레는 보이지 않았고, 여전히 텐트를 칠 마땅한 장소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 첫날이 이렇게 힘든데 끝까지 갈 수는 있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기 시작했을 때, 드디어 강 건너에서 아비스코아우레가 어슴푸레 보이기 시작했다.
거리감을 상실하게 만드는 지형 때문인지 아비스코아우레를 보고도 거기까지 도착하는데  30분을 더 걸어야 했다. 어쩌면 체력은 심리상태에 더욱 좌우되는 것 같다. 탈진했나 싶을 정도로 나는 완전히 지쳐버렸다. 해가 지고 있을 무렵이었고 빗줄기가 더 굵어져서 텐트를 칠 엄두도 나지 않았다. 2층 침대의 아래 칸 한 자리만 남아서 모로 누워 부둥켜 안고 자야했지만  그것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시지를 대충 잘라 넣고 라면을 끓여 얼른 목에 들이부어 삼키고는 바로 쓰러져 잤다. 겨우 6시가 조금 지난 시각이었을 것이다.

너무 일찍 자서 충분히 수면을 취하고도 새벽에 출발할 수 있었던 둘째 날은 계획했던 구간 중 가장 긴 구간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점은 가장 긴 동시에 가장 높이 올라가는 구간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시작하자마자 계속해서 600m 정도를 올라야 했던 구간은 생각보다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올라가서 만난 어느 한 연못(뭔가 외부 행성의 연못 같은 느낌이다. 억센 풀과 꽃이 듬성듬성 돋아나 있었는데, 오리가 거닐 것 같은 예쁜 연못은 아니었다.)에서 따뜻한 점심을 해 먹고 잠시 누워서 휴식을 취할 때는 처음으로 모든 걸 내려놓은 듯한 편안함을 느꼈다.

너무 많이, 또 오래 걸어서 알레스아우레(Alesjaure)에 도착했다. 거리가 멀고 지형이 조금 지루해서 중간에 텐트를 치고 싶은 유혹이 자꾸만 들었으나, 이 헛은 정말 멋진 언덕 위에 있었고 특히 사우나까지 있어서 포기할 수 없었다!(자작나무 장작으로 사우나를 데우고 몸이 뜨거워지면 옆 차가운 냇가에 달려가서 몸을 담근다. 굳이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지 않는 한 사우나와 냇가를 왔다 갔다 하는 나체들을 구경할 수 있다!) 헛에 방이 아직 남아 있었으나 우린 텐트를 쳤고 덕분에 밤 11시쯤 오로라도 볼 수 있었다! 그 아름다운 우주 현상을 보는데 이곳만큼 완벽한 장소가 있을까?

다음날은 말 그대로 생사의 기로에 섰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렇다는 뜻이다.)
다음 헛인 샤크티아(Tjäktja)는 너무 가까웠고, 그 다음인 셀카(Sälka)까지는 조금 멀었다. 우린 일단 걸어보기로 했다. 15Km정도 떨어져있던 샤크티아는 점심이 조금 지나서 도착할 수 있었다. 사실 여기까지도 피곤이 쌓여서 그런지 조금 힘들었다. 다만 아직 남은 낮 시간이 약간 아까웠고, 조금만 더 힘을 낸다면 셀카까지 가서 더 나은 숙영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셀카가 부대시설이 조금 더 좋다.) 샤크티아를 지나쳐서 샐카까지 가기로한 건 정말 잘못된 결정이었다. 둘 다 이틀 정도를 걸으니 이 곳을 약간 만만하게 본 탓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샤크티아를 지나자마자 비가 세차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도에 표시된 것에 비해 지형은 가파랐다. 바람이 역방향으로 세게 불어와서 한발 한발 내 딛는것이 어려웠고 몸은 계속해서 젖고 있었다. 어느세  해발고도가 꽤 높아졌는지 낮인데도(걷고 있는데도) 추위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커다란 암석들이 불규칙하게 깨져서 가파른 평야를 이룬 것 같은 지형은 텐트를 치는 것이 아예 불가능했다. 아직 6Km이상은 더 가야할 것 같은데 해는 지고 언덕은 아직 오르지도 못한 상태였다.

다급함에 아드레날린이 막 분비되는 것을 느꼈을때 저 멀리 언덕위에 집같은 것이 보였다!

‘신기루인가? 지도에도 여기에는 헛이 없는데?’ 헛이길 간절히 바랬다.  내 머릿속엔 사실 그 바람 외에 마땅한 대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지도에도 없는 작은 비상헛!

‘아 살았다!’

문을 여니 사람들이 있었다. 독일인 모녀였고 자신의 식량을 등에 맨 개와 함께 트레일을 하는 팀이었다. 따뜻한 차를 끓여마신 모녀는 아직 해가 있으니 샤크티아에 내려가서 오늘밤을 보낼 것이라며 비상헛을 떠났다.

이후에 스톡홀롬에서 왔다는 사이좋아 보이는 모자와 함께, 우린 작고 좁은 비상헛의 공간을 조심스럽게 배려하며 같이 밤을 보냈다.

‘안전’, ‘보호’라는 단어를 많이 떠올린 날이었다. 비를 막아줄 지붕과 바람을 막아줄 벽만 있어도 고마운데 헛 안에는 난로도 있었고 장작도 있었다. 이런 것을 만들어놓고 준비해 놓은 누군가에게 하염없이 감사를 보냈다.

다음날 우린 무난한 내리막과 평지를 걸어 셀카에서 점심때쯤 도착했다. 간단한 점심을 해 먹고 있을 때 우리보다 여유 있게 출발한 스톡홀름 모자도 도착했다. 힘이 넘치는 아들에 비해 나이 든 어머니의 무릎은 심각해보였다. 그래서 그들은 그 곳에서 하루를 묵을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걱정을 뒤로 한 채 싱이(singi)로 출발했고 해가 지기 전에 어렵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아름다운 냇물이 흐르는 곳이었고 정말 이상적인 텐트 자리도 차지 할 수 있었다. 피곤이 일상이 되어버리니 반작용으로 몸 어딘가에 근육이 생긴 느낌이었다. 내일은 더 잘 걸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이해할 수 없는 자신감같이 생기는 날이었던 것 같다. 아침의 분홍빛 여명에 아내는 비명을 지르며 미친 듯이 사진을 찍어대며 좋아했다. 난 ‘그저께 본 환상적인 오로라에 비하면 별로인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뭔가에 환장하는데 객관적 기준 같은 게 있을리가 없다. 분명 아내는 오로라를 볼 때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입을 쩍 벌린 채 바라보는 나에게 측은지심 가득한 눈을 하고는 “이젠 들어가자. 춥다!”라고 했던 것 같다.

어제의 자신감과는 대조적으로 싱이를 출발해서 케브네카이제(Kebnekaise)까지는 이번 트레일에서 가장 힘들었던 구간이었다. 일단, 길이 없어졌다. 분명히 길이 있어야 하는 곳에  강과 늪이 가로 놓여 있었다! 양쪽이 산맥이고 그 사이를 걷는 구간이어서 어차피 한 방향으로만 가야 하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어쨌든 길이 없었다!

길만 없는 것이 아니고 지도와 지형이 전혀 맞지 않으니 너무 힘이 들었고 불안해졌다. 느낌으로는 이 정도 걸었으면 케브네카이제가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리 멀리 봐도 집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사전에 알아본 정보에는 가장 큰 헛이었다. 오후에 도착해서 늦은 점심을 먹고 힘이 나면 조금 더 걸어내려가  텐트를 치고 좀 쉬려고 생각했던 코스였고, 쉬울거라 예상해서 그런지 너무 힘이 들었다.

입에서 욕지거리가 나올 때쯤 언덕을 돌아 내려가니 리조트가 나왔다. 그렇다 케브네카이제는 헛이 아닌 리조트 수준이었다!

레스토랑에서 너무 맛있는 사슴고기를 먹고 나니 2시쯤 되었다. 고민이 되었다. 조금 더 가서 텐트를 치고 자면 다음날 니칼루옥타까지 가는 여정이 좀 더 편할 것이었다. 그때  고맙게도 비가 내렸다. 그것도 꽤 세차게 내려주었기 때문에 즉시 이곳에서 쉬기로 결정한 후 호텔급!이라 부를만한 2층 침대를 결제했다.
마침 내려준 비 덕분이지만 처음으로 했던 이 보수적인 선택은 이번 트레일에서 가장 잘한 결정이었다!
새벽 바람에 집이 통째로 흔들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난 북극권의 가을에 태풍이나 허리케인이 온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도 없었고 실제로 태풍을 직접 많이 겪어봤지만 그날처럼 무섭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었다. 나무로 지은 집이긴 하지만 여러 동이 연결된 큰 집이었는데 세찬 비바람에 금세라도 넘어질 것처럼 흔들려서 잠에서 완전히 깰 수밖에 없었다.  3대가 같이 놀러와 우리와 같은 거실을 쓰고 있던 스웨덴 가족들은 이미 모두 거실에 나와 따뜻한 차와 간식을 나눠 먹이며 우려 섞인 눈으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만일 그날 걸어 내려가 텐트를 쳤다면 통째로 날아갔을 것이다!

다음 날 유럽부자들이 헬기를 타고 오르내리는 것을 보며(사실 그 곳에서 헬기는 조금 비싼 택시 수준으로 일반화된 교통수단이다.) 우린 니칼루옥타를 향하는 마지막 여정을 시작했다.  이온음료 광고 같은 날이었다. 어제 내린 비 덕분에 무지개가 뜬, 맑고 화창한 하늘 위로 구름이 지나갔다. 강과 나무들이 있는 무난한 내리막길이었다. 그렇다. 어느새 자작나무가 다시 보일 정도로 우린 걸어 내려와 있었던 것이다.

니칼루옥타에 내려와서 사미족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훌륭하게 먹었고 그곳에 전시된 사미족과 관련한 많은 물품과 책을 보면서 하루에 두 번 밖에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렸다. 아무런 이유 없이 울컥울컥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러한 감정은 이유도, 원인도, 해석도 가능하지 않다. 슬프지만 기쁜, 많은 단어들을 조합해도 표현할 수 없는 그런 상태였다.

그리고 돌아와 묵은 도시 키루나(Kiruna)는 유럽에서 가장 추운 도시들 중 하나인 곳이었다. 자연이 좋아 들어갔지만 가장 잘 보존된 자연에서 며칠 지내고 나와 맞이한 문명은 정말 너무 좋았다! 지금도 키루나를 생각하면 울컥울컥해진다. 잘 조리된 사슴고기와 이름을 알 수 없는 생선요리를 먹었다. 다음날 기차를 타기 전 방문한 키루나시청의 전시와 일터의 모습은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왜 갔는지, 무엇을 얻고 왔는지 뭐라 꾸며댈 수도 있겠지만 쓰고 싶지 않다.(사실 쓸 재주가 없다.) 다만, 기회가 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 가봤으면 좋겠다. 생각해보면 그리 위험하지 않다. 난 끊임없이 ‘생존’이라는 엄살을 부렸지만 비교적 사람이 많고, 헛이 모두 영업을 하는 여름에, 충분히 준비해서 간다면 누구나 이 트레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지금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언가를 얻고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2017년 한해 일주일에 한 번씩 블로그에 글을 썼다. 내게 글쓰기란 내가 가진 재주와 능력 중 유독 거리가 멀어 연습해본 적 없는, 언제나 자신 없던 분야였다. 문장을 제대로 만드는 재주가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우연히 단체장 같은 것을 맡게 되면서 신문에 칼럼 같은 글을 기고한 적이 있었지만  여전히 글을 쓴다는 것은 내 영역이 아닌 것 같다.
주제를 잡고 몇 번 글을 쓰니 내 안의 일천한 지식이 금세 바닥이 나버렸다. 다음 주에 또 써야 한다는 생각에 짧은 고민을 거쳤다가 내 안에 남아있는 다른 주제로 글을 썼다. 그마저도 바닥이 나기 시작하니 이젠 연관성도 없는 글들을 써대기 시작했다. 억지를 부려 합리화해 버리고는 한 주도 빼놓지 않고 글을 쓰는데 큰 의의를 두었다.

몇 명 보지 않았을 글들이지만 그래도 그 글을 읽은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내가 쓴 모든 글들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종류의 글과는 매우 거리가 먼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용 면에선 좀 얻을게 있다고 치더라도, 그 표현 수준은 분명 읽기 힘든 글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일 년을 빠짐없이 글을 썼다. 겸연쩍고 부끄럽게도 뿌듯하기도 하다.

2017년 마지막 주의 이 글을 쓰고 2018년을 맞이하는 1월은 글을 쓰지 않고 잠깐 쉬려고 한다. 미친 짓과 쓸데없는 짓도 잠깐 하는 것은 용서가 될 수 있다. 물론, 누가 뭐라 하든 끝까지 해서 위대해지는 경우도 있지만 내가 매주 하나씩 글을 쓰는 것은 그렇게 대단한 것과는 확실히 거리가 멀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당신의 2017년이 행복하셨기를 바라고 2018년에도 무탈한 한 해를 보내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모두들 감사합니다.

HAMA.

 

 

 

HAMA

hama@intermono.com

음악을 좋아해서 가끔 만들기도 하고, 주로 나무를 좋아하지만 재료를 가리지 않고 뭔가를 만드는 걸 좋아하며, 요즘은 나무가 스마트 해지는 것에 몰두해 있습니다. 걷는 여행을 좋아하고 요즘은 백패킹까지 하며 좀 더 길게 걷고 있습니다. 인터모노에서 전자회로 설계와 외관 디자인 등 전반적인 Product Design을 맡고 있습니다.